산책

Posted by DamienRice 당신이 만든 것/음악 : 2008. 2. 16. 23:04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집에 있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것처럼 보일 무렵,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을 먹은 뒤 등풀을 밝히고 앉아 습관처럼 게임을 시작했을 무렵, 날씨가 너무 궂어서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하루종일 책상 앞에 있다가 지금 나간다고 하면 모두들 놀라 기절할 것 같은 무렵이었다. 계단 쪽은 이미 어둑어둑하고 현관문도 잠가 버렸지만, 갑자기 밀려든 불쾌감을 견딜 수가 없어 웃옷만 갈아입은 뒤 금방 돌아온다고 말해 버렸다.

 방문을 얼마나 세게 닫는가에 따라 불쾌감을 남기는 정도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거리로 나왔다. 갑작스러운 자유를 얻은 보답이라도 하듯이 팔다리를 가볍게 움직였다. 그렇게 거리를 걷다 보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결심할 일이 생기는 것과 함께 나에게 요구되는 것 이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자신하면서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 나를 발견한다.

 이렇듯 깊은 밤에 친구를 찾아가면 이 모든 느낌이 한결 강해지지 않을까.

프란츠 카프카 '관찰' 중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