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2.24 거절
  2. 2008.02.17 결심
  3. 2008.02.16 산책

거절

Posted by DamienRice 내가 만든 것/생각, 글 : 2008. 2. 24. 15:17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 묻는다. [어때? 나하고 가지 않겠소?]

 그냥 가 버린다면,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난 귀족이 아니에요. 용맹하면서도 평온한 눈과 초원의 바람을 맞으며 시냇물로 씻은 피부에 체격이 좋은 미국인도 아니죠. 그뿐인가요, 미지의 세계를 찾아 항해한 적도 없죠. 아름다운 내가 당신과 동행할 까닭이 있을까요?'
 
 [아가씨가 잊은 게 있군, 아가씨는 멋진 자동차에 앉아 거리를 질주하는 것도 아니고, 거추장스런 옷을 차려 입고 잔뜩 긴장해 있는 아가씨를 호위할 사람들도 없소. 아가씨를 위해 축복의 기도를 읊조리며 등뒤에서 따라가는 사람들 말이오. 가슴은 코르셋으로 훌륭하게 잡아맸지만 허벅지나 허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군.  그러고 보니 작년 가을에 우리를 즐겁게 했던 주름 드레스를 입고 있군. 그렇게 위험한 옷을 걸치고도 무심히 미소짓고 있다니.]

 [다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상대방을 너무 의식해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지기 전에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군요.]



프란츠카프카, 관찰-거절




  

결심

Posted by DamienRice 당신이 만든 것/책 : 2008. 2. 17. 20:10
 몸을 움직여야 했다. 이 비참한 느낌을 떨쳐 버리려면, 안락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테이블 주위를 뛰어다녔다. 목을 돌리고 두 눈에 힘을 주어 근육을 긴장시켰다. 지금 A가 찾아오면 정열적으로 인사한 뒤, B가 내 방에 있는 걸 참아내면서 다정하게 대접하고, C의 집에서 거론되는 일들에 대해서도 고통을 참으며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를 참으며 숨을 길게 들어마셨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흐르다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테고,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모든 게 불가능해질 것이다. 결국 나는 옛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모든 걸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진지해져야 한다. 그래도 힘들 것 같으면 유혹에 넘어갈 만한 행동을 아예 하지 말 것. 상대방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후회할 짓을 하지 말 것. 요컨데 유령처럼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생명체는 손으로 눌러서 죽여 버릴 것. 즉 무덤과 같은 최후의 안식 말고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건 새끼손가락으로 눈썹을 살짝 쓰다듬는 일이다.

프란츠 카프카, 관찰-결심


  

산책

Posted by DamienRice 당신이 만든 것/음악 : 2008. 2. 16. 23:04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집에 있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것처럼 보일 무렵,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을 먹은 뒤 등풀을 밝히고 앉아 습관처럼 게임을 시작했을 무렵, 날씨가 너무 궂어서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하루종일 책상 앞에 있다가 지금 나간다고 하면 모두들 놀라 기절할 것 같은 무렵이었다. 계단 쪽은 이미 어둑어둑하고 현관문도 잠가 버렸지만, 갑자기 밀려든 불쾌감을 견딜 수가 없어 웃옷만 갈아입은 뒤 금방 돌아온다고 말해 버렸다.

 방문을 얼마나 세게 닫는가에 따라 불쾌감을 남기는 정도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거리로 나왔다. 갑작스러운 자유를 얻은 보답이라도 하듯이 팔다리를 가볍게 움직였다. 그렇게 거리를 걷다 보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결심할 일이 생기는 것과 함께 나에게 요구되는 것 이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자신하면서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 나를 발견한다.

 이렇듯 깊은 밤에 친구를 찾아가면 이 모든 느낌이 한결 강해지지 않을까.

프란츠 카프카 '관찰' 중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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