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Posted by DamienRice 내가 만든 것/생각, 글 : 2008. 2. 24. 15:17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 묻는다. [어때? 나하고 가지 않겠소?]

 그냥 가 버린다면,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난 귀족이 아니에요. 용맹하면서도 평온한 눈과 초원의 바람을 맞으며 시냇물로 씻은 피부에 체격이 좋은 미국인도 아니죠. 그뿐인가요, 미지의 세계를 찾아 항해한 적도 없죠. 아름다운 내가 당신과 동행할 까닭이 있을까요?'
 
 [아가씨가 잊은 게 있군, 아가씨는 멋진 자동차에 앉아 거리를 질주하는 것도 아니고, 거추장스런 옷을 차려 입고 잔뜩 긴장해 있는 아가씨를 호위할 사람들도 없소. 아가씨를 위해 축복의 기도를 읊조리며 등뒤에서 따라가는 사람들 말이오. 가슴은 코르셋으로 훌륭하게 잡아맸지만 허벅지나 허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군.  그러고 보니 작년 가을에 우리를 즐겁게 했던 주름 드레스를 입고 있군. 그렇게 위험한 옷을 걸치고도 무심히 미소짓고 있다니.]

 [다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상대방을 너무 의식해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지기 전에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군요.]



프란츠카프카, 관찰-거절